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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연희동 모밀 하우스 : 사라지는 풍경과 기억을 수집하는 예술가의 집

서울 연희동 모밀 하우스 : 사라지는 풍경과 기억을 수집하는 예술가의 집

모밀 하우스는 4살에 떠난 고양이의 이름을 간직한, 시간의 흔적을 사랑하는 미술작가의 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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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 장지에 호분, 먹, 동양화 물감, 112.1x145.5 cm,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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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XODUS>, 겹붙인 한지 위에 백토, 먹, 동양화 물감, 162.2x260.6 cm, 2025

집 안 가장 깊숙한 곳에는 오래된 라탄장이 있습니다. 몇 년 전 원룸 생활을 정리하고 이사하기 전에 당근마켓에서 발견한 라탄장입니다.

너무 마음에 들어 곧바로 거래를 하러 갔지만 예상보다 훨씬 커서 차에 실리지 않았습니다. 결국 남자친구와 함께 1km 가까운 거리를 낑낑거리며 직접 들고 왔습니다.

이사도 하지 않은 작은 원룸에 거대한 라탄장이 먼저 들어왔고 집은 금세 비좁아졌습니다.

하지만 언젠가 더 넓은 집에서 이 가구와 살아갈 날을 상상하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라탄장은 또 다른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위층에는 식물들이 자라고, 아래층에는 먼저 떠난 고양이 모밀의 작은 추모 공간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결혼을 두 달 앞둔 친구 동생이 손에 바늘을 찔려가며 한 땀 한 땀 직접 만든, 모밀이와 똑같인 생긴 펠트 인형이 놓였습니다.

정성 어린 선물에 눈물을 펑펑 쏟았고, 지금은 이 집에서 시간과 기억, 사랑을 차곡차곡 쌓은 가장 소중한 풍경입니다.

by 하우스테이너 모밀 추억

하우스테이너 모밀 입니다. 어릴 적부터 미술은 늘 곁에 있었습니다. 부산에서 상경해 미술대학을 다닌 아버지와 손재주가 뛰어난 어머니 덕분에 자연스럽게 그림과 가까운 환경에서 자랐습니다.

예술고등학교와 미술대학, 그리고 대학원까지 이어진 세월에서 동양화를 전공하고 현재 미술작가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작가의 길을 결심한 이유는 단순했습니다. 졸업전시를 마친 뒤 스스로에게 질문했습니다.

“힘들었지만 나는 이 시간을 즐겼는가?”

답은 분명했습니다. 그 강렬한 몰입의 순간을 계속 경험하고 싶었습니다. 늘 같은 자리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풍경이 사실은 끊임없이 흔들리고 변화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날의 바람은 오래된 간판을 떨어뜨리고, 매일 보는 골목도 계절과 시간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을 보여줍니다. 일상은 고정된 풍경이 아니라 우연과 시간에 따라 계속 이동하는 장면입니다.

그래서 작업 역시 익숙한 것을 다시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당연하게 지나진 풍경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하고, 그 순간을 다시 화면 위에 옮겨냅니다.

빈티지를 좋아하는 이유도 비슷합니다. 새것보다 오래된 물건에 더 끌립니다. 사용한 사람의 흔적이 남아 있고, 그 물건이 지나온 시간을 상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연희동 곳곳의 빈티지 숍과 플리마켓을 돌아다니며 데려온 가구와 소품이 집에 친구처럼 모였습니다.

노부부가 사용한 라탄장, 평창동에서 데려온 나비장, 꽃무늬 커튼, 인도에서 온 액자, 직접 오려 붙인 종이 조각들.

겉으로 보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보이지만, 모두 한 집에서 공존하는 이야기들입니다.

저는 제 취향을 ‘빈티지 에클레틱’이라고 부릅니다. 줄무늬가 좋은 날도 있고, 꽃무늬에 빠지는 날도 있습니다.

비 오는 날에는 교토 소녀처럼 입고, 햇살이 강한 날에는 보헤미안처럼 입습니다. 예전에는 변덕이라고 느꼈지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내가 달라도 괜찮다고 믿습니다. 변화하는 마음 역시 하나의 취향이라고 여깁니다.

제 삶과 작업에 가장 큰 영향을 준 단어는 ‘모순’입니다. 양귀자 작가의 『모순』을 수년마다 반복해 읽고 있습니다. 읽을 때마다 마음에 남는 문장이 다르고, 같은 이야기인데도 전혀 다른 책처럼 다가옵니다.

세상도 사람도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을 이 책에서 배웠습니다.

대학생 시절 두 번이나 찾은 금호미술관 《무진기행》 전시 역시 비슷한 질문을 남겼습니다. 그 전시는 앞으로 어떤 작업을 하고 싶은지 진지하게 고민하게 만든 출발점이었습니다.

몇 해 전 힘든 시간을 보내며 붓을 내려놓고 싶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탄생한 작품이 있습니다. 친구의 한마디에서 시작한 그림이었고,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작업하며 수많은 고민을 거쳤습니다.

완성 후에 상도 받고 좋은 평가도 받았지만, 정작 더 중요한 것은 다시 그림을 그리고 싶다는 간절함입니다. 좋은 작품 하나를 만들면 모든 것이 쉬울 줄 알았지만 오히려 새로운 사유가 생겨났습니다.

돌아보면 집을 꾸미고 옷을 고르는 과정도 비슷합니다. 헤맨 만큼 결국 자신의 세계가 넓어지는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요즘은 대구 레지던시에서 생활하는데, 언젠가 오래된 집을 고쳐 살아보려고 합니다. 이전의 흔적을 지우지 않고 새로운 이야기를 덧입히는 공간에서, 제 취향을 온전히 담아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빈티지와 예술, 대화가 따뜻하게 오가는 장소를 꿈꾸고 있습니다. 연희동에는 멋진 전시장과 극단, 요가원과 선술집이 골목마다 숨어 있습니다. 저는 그런 공간들을 좋아합니다. 겉으로는 조용하지만 저마다 서사를 품고 있습니다.

우리 집에 오래된 아름다움과 사라지는 풍경을 사랑하는 하우스테이너를 초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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