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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논현동 가자미 하우스 : 끝에서 시작을 발견하는 컬렉터의 집
가자미 하우스는 라이프스타일과 미술품 전반을 다루는 MD의 집입니다.
1973년 명동화랑에서 이강소 작가는 첫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퍼포먼스 장면을 인쇄한 접시는 평면이 아닌 오목하고 둥근 접시 안에 이미지가 담겨 있습니다. 1973년이라는 시간과 당시의 전위적인 에너지가 고스란히 머물러 있는 듯한 인상을 줍니다.
시간은 흘러가는 것이 아니라 어딘가에 머무를 수 있다는 것. 접시의 오목한 곡면이 그것을 증명한다고 느낍니다.
by 하우스테이너 비스듬한 시선
하우스테이너 가자미 입니다. 가자미는 남편이 장난스럽게 붙여준 별명입니다. 제가 가끔 가자미처럼 옆으로 살짝 고개를 틀고 남편을 쳐다보곤 했습니다.
처음엔 농담처럼 들렸지만 지내다 보니 우리 집 분위기와 은근히 잘 어울려 자연스럽게 정착했습니다. 가자미처럼 비스듬히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이 제 삶의 방식이기도 합니다.
라이프스타일과 미술품 전반을 다루는 MD로서 시각적 구조와 미감을 중심으로 일합니다. 겉으로 드러내는 것보다 사유하고 탐구하는 방식을 선호하며, 빠르게 소모하는 감각보다 오래 남는 결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봄보다 겨울을 좋아합니다. 단순한 계절 취향이 아니라 시작과 끝을 바라보는 나만의 시선과 닿아 있습니다. 시작보다는 끝에서, 탄생보다는 죽음에서, 기획보다는 마무리에서 더 큰 의미를 발견합니다.
절망은 희망의 반대말이 아닙니다. 무너질 수 있다는 가능성을 알기에 더 단단히 서고, 사라질 수 있다는 진실을 알기에 오히려 긍정적으로 살아갑니다. 저는 이런 방식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이런 태도로 제 일을 완성해 나갑니다.
MD로 일하면서 결국 가장 강력한 조형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 만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수천 수만년 시간이 겹겹이 쌓여 나온 고고트(Gogotte) 형태에는 의도하지 않은 우연과 필연이 동시에 존재합니다. 그 밀도는 작가의 손기술이나 콘셉트보다도 강력합니다.
인간이 만드는 조형 역시 자연의 형태를 참조하고 변주하는 과정에 가깝다는 점에서 자연물은 조형의 출발점이자 기준이라 믿습니다.
집에 있는 다양한 물건은 대부분 직접 고르고 선택한 것들이라 각각의 맥락이 담겨 있습니다. 시각적 결과물뿐 아니라 그 이면의 구조와 여정을 함께 읽어내는 사람이 되고자 합니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밝고 화려한 이미지보다 조금 더 어둡고 특이한 미감에 본능적으로 끌렸습니다.
10세 이전 기억 중 가장 선명한 장면은 영화 『아담스 패밀리』에서 어머니가 장미꽃 꽃잎을 모두 잘라버리고 줄기만 꽃병에 꽂아 장식한 순간입니다. 그 장면은 너무나 멋지고 아름다웠습니다.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말하는 기준이 전부는 아니라는 것, 나만의 감각으로 아름다움을 느껴도 된다는 사실을 아주 어린 마음속에서 처음으로 자각했습니다.
팀 버튼(Tim Burton), 스탠리 큐브릭(Stanley Kubrick)처럼 독자적인 세계관을 구축하는 창작자에게 지속적으로 끌렸습니다.
그들이 만들어낸 시각적 결과에서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또한 장르적 개성이 강한 다양한 공포영화에서 오히려 감각적 해방감을 느꼈습니다.
공포 장르는 인간의 내면, 불안, 구조, 상징을 날것으로 드러내기에 제 세계관을 탐구하는 중요한 영감의 온실입니다.
지금 하는 일이나 취미에 뚜렷한 계기나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어떤 목표를 향해 억지로 자신을 밀어붙인 적도 없습니다.
늘 순간의 감각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때그때 마음속에서 "이렇게 가보라"고 말하는 방향이 있고, 그 신호를 크게 왜곡하지 않고 받아들입니다.
그러다 보면 어느 날 내가 하나의 일 안에, 하나의 취향 안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돌아보면 특별한 출발점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자연스럽게 흘러와 지금의 내가 되어 있는 방식과 흐름으로 살아왔습니다.
선택한 것들이 모여 어느 순간 형태를 갖추고, 그 형태가 다시 다음 선택을 안내해주는 맥락. 그래서 지금의 일과 취미도 살아온 흐름이 자연스럽게 만든 풍경에 가깝습니다.
제 일과 취미를 누군가가 먼저 봐주고 궁금해하며 말을 걸어올 때 특별한 감정이 생깁니다.
그 순간이 세상과 연결하는 소통 창구처럼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제가 만들어낸 무언가로 누군가가 움직이고, 그 움직임이 다시 돌아와 대화를 열어주는 경험은 사회 한 구성원으로 기능하고 있다는 깊은 실감으로 이어집니다.
조용하게 쌓아온 취향과 작업이 누군가에게 닿아 의미가 생기는 순간, 제가 존재하는 방식이 세상으로 확장하는 여정이기도 합니다. 그 감삭은 제게 굉장한 보람을 줍니다.
제 안에 올라오는 작은 메시지를 천천히 들여다보고, 그 흐름이 이끄는 방향을 따라가며 살아왔습니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생각이 있습니다. 언젠가 공예와 명상을 결합한 워크숍을 만들고 싶습니다.
수도승들이 시끄러운 세상에서도 단순한 손의 움직임을 반복하며 마음을 비워내던 장면을 좋아합니다.
그런 방식의 고요함을 현대적인 공예 안에 담아 손을 움직이는 동안 머릿속을 차분히 비우는 경험. 그 자체로 의미 있는 시도가 될거 같습니다.
공예적 명상, 명상적 공예를 할 수 있는 조용한 작업방을 만들어보고 싶습니다.
'무엇을 할 것인가'보다 어떻게 감각하고, 어떤 흐름을 신뢰하며 살아갈 것인가에 가깝습니다.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과 취미도 자연스럽게 확장할 거라 기대합니다.
우리 집에 독자적 미감과 고요한 깊이를 공감하는 하우스테이너를 초대합니다:)
Photo @윤도(Youndo)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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